과거의 틀에 얽매이지 않고 새로운 시도를 하여 창작된 시가 많아지고 있다.
원래 나는 산문시보다 일정한 율격을 지닌 시를 훨씬 좋아하기 때문에 원래 이런 시를 별로 좋아하지 않았다.
하지만 최근들어 꽤 매력 있는 형태의 시를 여럿 찾았기에 이에 대한 관심이 생겼고, 내친 김에 이에 대해 포스팅해보려고 한다.
프란츠 카프카
오규원
- MENU -
샤를로 보들레르 800원
칼 샌드버그 800원
프란츠 카프카 800원
이브 본느프와 1,000원
예리카 종 1,000원
가스통 바슐라르 1,200원
이하브 핫산 1,200원
제레미 리프킨 1,200원
위르겐 하버마스 1,200원
시를 공부하겠다는
미친 제자와 앉아
커피를 마신다
제일 값싼
프란츠 카프카
위 시는 언뜻 보기에 단순한 메뉴판과 몇 줄의 문장으로 보일 수 있다.
하지만 자세히 보면 메뉴판의 메뉴들은 모두 '가격'이 매겨진 인문학 작가들의 이름이다.
작가가 시를 공부하겠다는 그의 제자를 미쳤다고 표현한 것은 아마도 인문학 본연의 가치가 사라지고 경제적인 잣대로 값싸게 취급되는 현실 아래에서
인문학의 극치인 시를 공부한다는 것은 그만큼 힘든 일이 되었음을 나타내고자 한 의도였을 것이다.
실존주의 문학의 선구자로서 인문학의 대가 중 하나라고 할 수 있는 프란츠 카프카를 '제일 값싸다'고 표현한 것은
그만큼 현대 인문학의 입지가 많이 무너지고 있음을 드러내는 것이리라.
원래 나는 새로운 형태의 시를 볼 때마다 문학성이나 예술성을 깊이 느끼지 못했다.
너무 단순하거나 기발해서, 말하자면 '진짜 시인의 시'와 '막 쓴 시' 둘 중 어디에 해당하는 지에 대한 '근거'를 모르겠달까...
마치 캔버스에 휘갈긴 선 몇 가닥이 작가에 따라 다르게 평가받는데,
이것이 작가가 보여줬던 그간의 예술성에 미루어 그 작품을 평가한 것인지, 그 작품 자체의 예술성이 인정받은 것인지 감이 안잡히는 것과 같았다.
하지만 오규원 시인 '프란츠 카프카'에 끼워 넣은 메뉴판은 내게 신선한 충격과 생생한 감상을 던져줬다.
어느 정도 분연체 형태를 유지하고 있어 거부감이 덜했는 지는 몰라도,
시인이 표현하고자 한 그 감정과 생각이 너무나도 생경하면서 이해하기 쉬운 느낌으로 다가왔고
나는 이 시를 보며 새로운 형태의 시에 대한 생각을 많이 고쳐먹을 수밖에 없었다.
물론 정말 아무런 문학성 없이 마구 쓴, 새로운 시도라는 액자만 끼워 넣은 시도 많을 것이다.
아직도 나는 일정한 형식을 갖춘 시를 더 선호한다.
하지만 '괜히 새로운 시도를 한 시'가 아닌, '그 형태라서 다행인 시'인 시도 꽤 있다.
예를 들어, 위 시 외에도 정지용의 '장수산'은 산문 형태로 되어 있어서 옛날 느낌을 더 단정하게 자아내고,
sns시인 하상욱의 시들은 극도로 정제된 간단한 몇마디로 사람들의 공감을 이끌어 낸다.
황지우 시인의 '무등'의 경우 전체 시의 모양 자체가 산 모양을 띠고 있어 시의 주제와 숨가쁜 느낌을 효과적으로 표현함으로써 강한 인상을 남긴다.
이외에도 (원문을 확인하지는 못했지만) 기형도의 '텔레비전'이라는 시는 □ ←이 문자(?)하나로 본문이 끝이라 당혹스러운 느낌을 주지만
네모낳고 그 자체로는 텅 비어있는(그래서 여러가지를 담을 수 있겠지) 텔레비전의 느낌(순전한 내 감상이다)을 누구도 생각지 못한 방법으로 표현했다.
내가 아직 시에 대해 제대로 알지는 못하지만,
적어도 '새로운 형태의 좋은 시 쓰기'에 도전하려면 정말 막 쓴 시는 절대 아니어야 한다는 점,
오히려 더 많은 구상과 상식적이면서도 매우 창의적인 어떤 영감이 있어야 한다는 점은 확실히 알 것 같다.
내 취향은 아직도 정제된 분연체의 시이지만, 언젠가 나의 시 쓰는 솜씨가 무르익으면
멋있는 모양의 시를 한 편 쯤은 써보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