친구가 추천해줘서 읽은 책. 내가 읽은 책은 이 표지가 아니라 딱딱하고 붉은 색의 표지로 된 버전이었기 때문에 솔직히 처음에는 거부감이 들었다.
기괴하게 생긴 배불뚝이 아저씨가 동양화풍으로 그려진 '빨간 책'이라니! 무서운 책 아니면 야한 책일 것 같았다.(ㄷㄷ;;)
막상 읽어보니 생긴 것과 다르게 슥슥 읽히는 책이었다.
너무 유아틱해서 전문의보다는 돌팔이 이미지가 먼저 떠오르는 괴짜 정신과 의사 이라부와 관능적인 애연가 간호사 마유미는 딱 보기에 신뢰가 가지 않는다.
5개의 소소한 에피소드가 있는데, 뾰족한 물건만 보면 오금을 못 펴는 야쿠자 중간보스, 어느 날부턴가 공중그네에서 번번이 추락하는 베테랑 곡예사, 장인이자 병원 원장의 가발을 벗겨버리고 싶은 충동에 시달리는 젊은 의사 등 다양한 강박 증상에 시달리는 환자들이 우연히 이라부의 병원을 발견하고 상담을 받는다.
일반적인 의사들과 다르게 체면을 신경쓰지 않고 아이마냥 환자의 직업을 체험하려 하는 이라부를 보며-돌팔이가 아닐까 의심도 하지만-환자들은 차츰 자신의 문제가 자기 자신의 마음에서 나왔음을 깨닫고 강박을 털어버릴 수 있게 된다.
솔직히 말해, 보통 이런 책의 독후감엔 '이런 의사가 현실에도 있었으면 좋겠다'는 말이 들어가지만 만약 이라부가 현실의 인물이었다면 난 당장 피했을 것 같다.
현실에서 어린아이만큼 천진난만하고 세상 물정 모르며 비타민 주사를 놓는 것에 흥분해하는 이상한 의사가 있는 지하 병원에 치료를 받으러 갈 사람이 몇이나 될까?
이라부는 그런 의미에서 의사라기보다는 상징적인 인물이다.
현실적인 상상보다는 '너무 복잡하게 생각하지 말고 나 자신의 내면의 목소리를 듣고 마음 좀 편하게 먹으라는' 메시지를 전하는 장치로서의, 가상적인 느낌이 강한 인물이다.
그렇기에 더욱 현실과 다른 책 속 이라부의 이야기에 부담 없이 빠져들 수 있는 것이고, 비현실적인 인물 설정 속에서 독자 자신의 현실을 진지하게 돌아볼 수 있게 하는, 역설적이게도 비현실적인 이라부의 성격은 글로 전달하기 어려운 추상적인 책의 의미를 현실로 끌고 오기 위한 도르래와 같다.
너무 강박적인 생각에 시달릴 때는, 그것 때문에 스트레스를 받을 때는, 때로 편한 마음으로 자신을 살펴보고 자신의 마음의 소리에 귀를 기울이는 것이 필요한데 현실에서는 그게 잘 안될 때가 많다. (한번 강박에 물들어버리면 속마음에 귀 기울이기 어렵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라부의 치료 과정(?)을 가볍게 읽으며 따라가다 보면 어느새 이전보다 마음이 편해진 나를 발견할 수 있다.
등장인물들의 강박이 현대인의 그것과 상당히 비슷해서인지 이 책을 읽으면서 저절로 나를 살피게 된다.
사회생활에 지쳐 가는 사람에게 작은 여유와 성찰의 시간을 주고 싶을 때 슬쩍 건네주고 싶은 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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